마이크로바이옴

마이크로바이옴과 기억력의 관계

edendaelmom 2025. 4. 18. 21:38

장내 미생물 다양성과 인지 유연성의 신경생물학적 연계


기억력은 단순한 정보의 저장 능력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해석하고 기존 기억과 통합하며, 필요할 때 정확히 인출하는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입니다. 이처럼 복잡한 뇌의 작동에 장내 미생물, 즉 마이크로바이옴이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히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최근에는 "미생물-신경 회로망 이론"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2025년 초에 발표된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실험에서는,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해마에서의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발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BDNF는 뉴런의 생존과 성장을 돕는 신경영양인자로, 기억 형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마이크로바이옴 다양성이 낮은 그룹에서는 BDNF 수치가 절반 이상 감소했으며, 이는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고 기존 기억과 연계하는 능력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미생물 다양성은 단순히 ‘종 수’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적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균주는 동일한 종류의 SCFA를 생성하더라도, 그 부산물의 조성과 면역계 반응 유도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이는 장내 환경이 뇌로 전달하는 신호의 질을 결정짓고, 기억력과 같은 고차원적 인지 기능에 영향을 미칩니다. 즉, 마이크로바이옴은 뇌의 신경 연결망 자체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생물학적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이크로바이옴과 기억력의 관계


특정 미생물과 신경전달물질 조절 메커니즘


기억력 향상에 있어 특정 미생물 종이 가진 영향력은 이제 단순한 상관관계를 넘어, 원인적 기전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Lactobacillus plantarum PS128 균주는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농도를 조절하는 데 효과적이며, 이는 학습 속도와 작업 기억(task memory)의 질 향상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ADHD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이중맹검 연구에서는 이 균주를 8주간 섭취한 그룹에서 주의 집중력과 정보 인출 정확도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향상된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Akkermansia muciniphila는 장 점막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세로토닌 수용체의 민감도를 조절해, 정서 안정과 기억 강화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 균주는 특히 고지방 식이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감소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경우 기억력 저하와 동시에 우울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정서 상태와 기억력 사이의 관계가 단순히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기반 위에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한편, 프로바이오틱스와 달리 포스트바이오틱스(postbiotics)라 불리는 미생물의 사멸산물 또한 최근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살아있는 균보다 안정적이며, 특정 신경전달물질 생성 경로에 직접 작용함으로써 기억력에 미치는 영향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부티르산 유도체를 포함한 포스트바이오틱스는 해마의 장기 강화 반응(LTP, long-term potentiation)을 증가시켜, 기억 저장 효율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면과 마이크로바이옴의 상호작용: 기억 통합의 생체리듬


기억은 수면 중에 강화되고 재구성됩니다. 수면 중 해마는 뇌의 다른 부위와 정보를 재정렬하며, 이 과정에서 신경세포 간의 연결이 강화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최적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장내 미생물입니다. 2023년 하버드 의대 연구팀은 수면 리듬이 불규칙한 사람들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에서 특정 염증 유전자 발현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결국 해마에서의 시냅스 밀도 감소와 기억력 저하로 이어집니다. 더 나아가, 장내 미생물은 숙면에 필수적인 신경 전달 물질인 GABA(감마-아미노부티르산)의 전구체를 생산하기도 합니다. GABA는 뇌파를 안정시키고 깊은 수면을 유도하는 데 필수적인 물질로, 기억 통합(memory consolidation)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특히 Bifidobacterium breve는 GABA 생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실제 실험 참가자들에게서 수면의 질과 다음 날 기억력 점수가 함께 향상된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한편, 수면의 질은 뇌의 청소 기능인 글림프 시스템의 효율성과도 직결됩니다. 이 시스템은 수면 중에 뇌 속의 베타-아밀로이드나 타우 단백질 같은 독성 물질을 제거하는데, 장내 염증성 미생물의 증가는 이 시스템의 기능을 억제하여 기억력 감퇴를 가속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듯 수면과 마이크로바이옴, 기억은 독립된 요소가 아니라 상호 순환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삼각 구조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맞춤형 마이크로바이옴 치료: 기억력 향상을 위한 개인화 전략


최근 바이오헬스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마이크로바이옴 개인 맞춤 치료’입니다. 기억력 저하의 원인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각 개인의 장내 미생물 구성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맞춤형 프로바이오틱스나 식단을 처방하는 방식입니다. 예컨대, 장내에 Prevotella 비율이 높은 사람은 콜린 계통의 신경전달물질이 비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아, 기억 정착 과정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항염증 작용을 하는 Faecalibacterium prausnitzii를 증식시킬 수 있는 식단이 권장됩니다.

기억력 향상이라는 목적에 있어 가장 진보된 접근 중 하나는 페칼 마이크로바이옴 이식(FMT)입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2024년 연구에서는, 중등도 인지장애를 겪는 환자에게 건강한 청년의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식한 결과, 해마의 시냅스 형성 유전자가 활성화되고 단기 기억력 검사가 눈에 띄게 향상된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아직은 윤리적, 의료적 안정성 확보가 과제지만, 미래의 기억력 치료법으로서 잠재력이 큽니다.

또한 최근에는 식이섬유와 같은 프리바이오틱스(prebiotics) 섭취가 마이크로바이옴 다양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특히 고구마, 치커리, 아스파라거스 등은 장내에서 부티르산 생성균을 활성화시켜 기억 형성에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합니다. 결국 기억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은 특정 보충제나 약물보다, 나에게 맞는 장내 생태계를 설계하는 '개인화된 생물학'이라는 개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